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성도 1 > 주일설교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일설교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성도 1

페이지 정보

작성자가재리교회 댓글 0 조회 1,073 작성일 21-03-14 17:32

본문

2021년 3월 14일 주일낮예배
성경 마11:16-17 “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성도 ”

3월 둘째주일낮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이시대는 핸드폰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 일을 할때도 핸드폰, 잠자리에 누워서도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가 잠을 잡니다.
모든 일들을 핸드폰에서 해결하고, 사람들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삽니다.
핸드폰과 사귀면서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가족간에, 이웃간에 대화는 사라지고 사람의 감정은 점점더 메말라가고, 삭막해져가고 있습니다.

오늘본문 말씀
마11:16-17
“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        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모습이었습니까?
전혀 선지자나, 주님의 말씀를 듣지 아니했습니다.
주님께서 귀있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유를 통해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많은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하는데, 두명의 아이가 짝을 지어서, 우리 결혼식 놀이를 할거야, 하면서 결혼식때 불리던 피리를 불었지만, 그 곳에 모여있는 친구들은 ‘ 우리들은 전혀 기쁘지 않아’ 하면서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결혼식놀이를 말하던 아이가, ‘ 그래 너희들이 즐겁지 않으면, 장례식 놀이를 하자고 하면서 장례식 놀이를 시작해도, 그 친구들은 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비유를 통하여서  피리를 분다는 것은 죄의 용서와 위로, 참된자유, 희망의 소식을 전하여도 그들은 듣지 아니하였고, 슬피 울어도, 곡을하지 아니하였다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회개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전혀 들을려고하지 않고 무반응하였고, 세례요한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똑 같이 회개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역시 듣지 아니했고 무시해 버렸으면, 오히려, 자기의 신학하고 맞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주님은 애통하셨습니다.
요즘 우리시대도 개인주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아니하고, 이웃을 어려움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성경의 위대함은 자기의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시고,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보게하시는 것이 성경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돌과 같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무감각한 육체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감정이 없는 로봇트와 같은 존재에 감정을 알게 하셨습니다.
로봇트는 마치 사람과 비슷해서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이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로봇트는 감정이 없어서 사랑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슬퍼할 수 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또는 거부하여 핸드폰이나, 켬퓨터 기계와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이 사라지고, 마치, 기계나, 로봇트처럼 무반응, 무신경, 무책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가끔식, 큰 길, 도시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사람들이 말린 생각을 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한 여자청년이 버스기사와 그안에 타고있던 남자들로부터 버스안에서 성폭행당하였고, 이를 말리던 남자친구를 때려 길에다 버렸습니다.
한시간 후에 여자청년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유는 여자가 밤늦게 싸돌아 다닌다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에 여중생들이 후배여학생 한명을 집단 폭행하고 뭘 잘한 일이라고 동영상을 찍어서 세상에 알렸습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져가는 것은 나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입니다.
이들의 생각을 누가 막을 수가 있을 것이면, 누구말을 듣겠습니까?
우리 어른부터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보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 누구말도 듣지 않을 것이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 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시람에게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을까요?
기계처럼, 로봇트처럼, 켬퓨터는 옅에서 사람이 쓰러져서, 불이나도 정해진 대로 계속해서 돌아갑니다.
이웃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반응, 무신경으로, 자기 역할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처럼, 로봇트처럼, 켬퓨터처럼 감정없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따뜻한 봄날에 꽃이 피고 향기가 나면, 때로는 가슴이 설레야하고, 내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옅에 사람이 쓰러지면, 일을 중단하고, 119에 전화를 해야 하고, 옅집에 불이 났으면, 내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달려가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내야하고, 이웃의 결혼식이 있으면, 찾아가서 축하해 주어야 하고, 이웃에 장례가 낳으면 드려다 보아야 합니다.
기계처럼, 로봇트처럼, 켬퓨터처럼, 감정없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웃과 함께 기쁠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때 함께 슬퍼하면서 살아가라고, 생기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것 같지만, 세상을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세상, 나 혼자서만 사는 세상은 멋이 없고, 맛도 없습니다.
함께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서 기뻐해야 할 곳에서는 기쁨을 나누었고, 나사로의 죽음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시면서 슬퍼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잠간만 일을 멈추고, 축하할 곳이 있는지, 슬픔을 위로해야 할 곳이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성령의 감동과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는 삶으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가재리교회

  • 담임목사 : 정무룡
  • 주소 : 경기 화성시 팔탄면 동막골길 45 ( 가재리 392-1 )
  • 전화 : 031-353-2022
  • 모바일 : 010-8311-2022
  •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정무룡 ( jmr11111@naver.com )
  • 호스팅제공 : 카페24(주)
Copyright © Gajeri.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