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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일설교

" 친구가 있으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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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재리교회 댓글 0 조회 1,005 작성일 21-02-2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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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4일 주일낮예배
성경 요11:11   “ 친구가 있으십니까 ? ”

3월달 첫째 주일낮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게 좋은 사람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여러분!  여러분은 좋은 친구가 있으십니까 ? ”
우리가 이땅에 태어나면 어떤 만남이 결정됩니까?
부모와 자녀, 결혼을 하면은 남편과 아내, 학교에 가면은 스승과 제자, 직장에 들어가면은 사장님과 종업원, 교회와 오면은 목회자와 성도의 인간관계가 맺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인연,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려면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사장과 종업원, 목회자와 성도가 아닌 친구의 관계로 발전되어야 오랫동안 변함없는 인연을 이어갈 수있습니다.
저의 주변에서 목회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주저없이 답합니다.
“ 목회는 같이 사는 것이야 ”
부모와 자녀의 인연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인연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사장과 종업원의 인연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도 같이 사는 것입니다.
영화 「님아 이 강을 건너지 마오」76년 오랫동안 부부의 인연을 맺어온 89세 강계열할머니와 98세 조병만할버지 이 두분이 아주 행복하게 사시다가 이별을 하셨는데 저가 그영화를 보니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어린아이처럼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장난도 치고 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가고 오랜친구처럼 사시니까 두분이 아주 행복하게 부부의 인연으로 사셨습니다.
한 번은 저가 우리딸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우리딸이 오빠에게는 깍득하게 대하는데 저에게는 막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화를 냈습니다.
“ 너는 오빠에게는 깍득하게 대하면서 나에게는 함부러하는 것 같다.
  나는 너의 아빠로서 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
그랬더니 우리딸이 울면서 한마디 던졌는데, 저는 그말이 비수로 날아와 저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 아빠는 친하잖아! ”

그 다음부터는 저의 생각이 바꿨습니다.
“ 우리딸이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버릇없이 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좋아해서 편하니까 그러는구나 ”
그 다음부터는 저와 딸과의 사이는 아빠와 딸의 관계가 아닌 친구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윤중현장로님과 김현곤장로님께서는 우연히 목욕탕에서 만나셨어 지금까지 좋은 신앙과 인생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친구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친구하면 다윗과 요나단을 빼놓을수가 없습니다.
요나단은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 사울왕의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자기 자기보다 자기 아버지보다, 누구을 더 좋아 합니까?
다윗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면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다윗은 자기의 경쟁자이기 때문에 가까이해서는 안되며 아버지처럼 다윗을 죽여야 자기가 왕이 될 수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위해서 아버지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미리 정보를 알려주어서 피신시키고 먹을것도 갖다주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오늘본문 요11:11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  

예수님께서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쪽으로 내려오시면 꼭 들르시는 곳이 있습니다.
베다니마을입니다.
베다니마을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3        km 떨어진 곳인데 베다니는 아주 가난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가난하고 작은 동네를 자주 들리셔서 식사도하시고 잠도 주무시곤 하였습니다.
이 베다니에 누가 살고 있기때문입니까?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가정은 일찍히 부모를 여이고 남매들이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가나한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고 잠도 주무셨습니다.
왜 유독 이집을 자주 가셨을까요?
이동네 부자집에 찾아가서 식사도하시고 잠도 주무시면 얼마나 대접을 잘 받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자집을 찾지 아니하시고 이가난한 나사로의 집을 찾으셨습니다.
그이유는 편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처럼 생각하고 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보좌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고 너는 가난한집 죄가 많아서 부모를 일찍 여의 저주받은 집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예수님은 나사로을 친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어떻게 하면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요15:13-15
“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

좋은 친구는 비밀이 없습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할 수 없는 비밀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습니다.
창18장을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신과 그의 창조된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친구사이같습니다.
친구 사이는 비밀이 없고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고 있으면 제일먼저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분의 계획을 제일 먼저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달려가십니다.  
그리고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 내년 이맘때즘에 내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
또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시려는 계획도 알려 주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를 하자 그 기도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친구는 지식인 권력인이 아닌 그당시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세리, 창녀, 가난한자, 병든자, 그 땅에서 소외된 사람을 친구로 삼았습니다.
좋은 친구는 자기몸을 아끼듯이 친구의 몸을 아끼고, 좋은 친구는 자기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친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내고통을 내가 알듯히 친구의 고통을 위해서 기도하고
예수님께서는 전혀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에서는 스승보다, 사장님보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희생하여 친구의 생명을 살렸듯이 우리도 나의 작은 마음과 정성을 희생하여 친구를 살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예수님처럼 좋은 친구가 많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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